커맨드 앤 컨커 RTS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다 Command and Conquer

 
커맨드 앤 컨커 이미지 1

 

2013년 10월 29일, 일렉트로닉 아츠(이하 EA)는 자회사인 빅토리 게임즈가 개발하던 [온라인 RTS 커맨드 앤 컨커]의 개발 중단을 선언했다. 게임의 품질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며칠 전 까지 멀쩡히 테스트를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갑자기 중단되면서 게이머는 물론 제작사인 빅토리 게임즈도 당황했다. 결국 EA의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고 [커맨드 앤 컨커] 프로젝트는 그렇게 중단됐다. 제작사인 빅토리 게임즈는 곧바로 해체 수순에 들어갔고 모든 개발진은 해고당했다. 게임비즈니스 세계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커맨드 앤 컨커]의 개발 중단을 단순히 특정 게임의 실패 정도로 봐서는 안 된다. 이것은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RTS 장르의 황금기를 이끌어온 『커맨드 앤 컨커』 프랜차이즈에 내려진 사망선고였고, 다른 한 편으로는 게임 역사에서 이제 한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온라인 게임으로 만들다 개발이 중단된 [커맨드 앤 컨커]

 

모든 실시간 전략 게임의 아버지 ’듄2’

1985년, 브렛 스페리(Brett Sperry)와 루이스 캐슬(Louis Castle)은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웨스트우드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80년대 말까지 SSI나 일렉트로닉 아츠(EA)와 계약해 [화성 이야기] (Mars sage)와 [베틀테크] (BattleTech) 시리즈 등의 게임을 내놓던 작은 규모의 회사였다. 이 당시의 웨스트우드는 잦은 발매 연기로 악명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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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우드 스튜디오의 로고

[주시자의 눈]

1990년대로 접어들자 웨스트우드는 RPG 게임인 [주시자의 눈] (Eye of the Beholder) 을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주시자의 눈]은 게이머와 게임 잡지에게 높은 평가를 받으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에 힘을 얻은 웨스트우드는 이듬해인 1991년에 후속작인 [주시자의 눈2]를 내놓아 다시 한 번 성공을 거두었다.

웨스트우드 전설의 시작 [듄2]

RPG 장르에서 재미를 본 웨스트우드는 다른 장르로 눈을 돌렸다. 당시 웨스트우드는 우연한 기회에 프랭크 허버트의 걸작 SF 소설 ‘듄’ 시리즈의 게임화 계약을 맺었다. 이들은 소설의 배경인 황량한 모래 행성 ‘아라키스’를 놓고 벌이는 세 가문의 암투를 주제로 전략 게임을 만들었는데, 이 게임이 바로 모든 실시간 전략 게임의 아버지라 불리는 [듄2] (Dune2, 1992)다.

게 임의 역사에서 [듄2]는 절대적 위치를 차지한다. [듄2]는 자원채취 및 건설, 병력 생산이라는 실시간 전략게임의 개념들이 모두 담겨있었다. [스타크래프트]의 가장 큰 특징인 3종족 구도도 [듄2]에 이미 구현되어 있었다. 이전까지 애매한 모습이던 실시간 전략 게임(Real Time Strategy)의 기본적인 장르 구조는 마침내 [듄2]를 통해 완성되었다. 이후 RTS 장르는 90년대 PC게임 시장 최고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시대가 바꾸어 놓은 ’커맨드 앤 컨커’의 설정

“일단 이 게임의 로딩 스크린을 한 번 보면, 아침까지 붙잡고 있게 된다. 커맨드 앤 컨커는 내가 지금껏 경험한 게임 가운데 가장 훌륭하게 디자인 된 게임 중 하나다.” – 게임스팟 리뷰 중

웨스트우드는, 90년대 초 본업(?)인 RPG 게임으로 성공을 거뒀다. 앞서 언급한 [주시자의 눈] 시리즈를 필두로 [키란디아의 전설] (The Legend of KyrandiaBook One, 1993) 시리즈, [지혜의 땅] (Lands of Lore: The Throne of Chaos, 1993) 시리즈 등 한 시대를 풍미한 걸작 RPG 게임을 내놓았다.

한편, [듄2]의 성공에 고무된 웨스트우드는 이번에는 ‘현존하는 최고의 RTS를 내놓겠다’는 목표로 차기작을 계획했다. 원작이 있는 [듄2]와는 달리,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들만의 색깔을 가진 RTS를 출시하는 것이 목표였다.

1995년 출시된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던]. 사진은 후에 윈도우용으로 이식된 GOLD 버전의 게임화면이다.

이렇게 출시된 게임이 바로 이후 웨스트우드의 대표작인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던](Command & Conquer: Tiberian Dawn, 1995)이다. 머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우주에서 떨어져 지구를 오염시킨 ‘타이베리움’이라는 광물을 놓고, 두 세력집단인 GDINod가 충돌한다는 내용의 게임이다.

웨스트우드는 기획 초기에는 [커맨드 앤 컨커]를 판타지 배경으로 설정했다. 전작인 [듄2]가 SF 배경이다 보니, 차기작은 마법사와 기사가 등장하는 판타지가 적합하고 판단했었다.

하지만 당시 국제정세가 게임의 배경을 변화시켰다.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로 냉전이 종식되고 이어 걸프전이 발발하는 등 세계정세가 긴박하게 흐르던 때였다. 이런 국제정세는 게임의 소재로 삼기에 적합했다.

웨스트우드도 급변하는 정치적 상황에 주목했다. 동서간 냉전 이후 새로운 전쟁양상인 ‘테러리즘’을 게임의 한 축으로 잡았다. 비밀결사이자 테러 단체인 Nod와 이 단체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인 ‘케인’을 악의 축으로 설정했다.

세월이 흘러 [커맨드 앤 컨커3]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케인’. 웨스트우드 스튜디오의 조지프 D. 쿠건(Joseph D. Kucan)이 역할을 맡았다.

게임의 비주얼은 압도적이었다. 스토리를 강조하기 위해 실사 동영상을 과감히 도입했다. 게임 중간 중간에 배우들이 연기하는 스토리 영상을 삽입해 몰입도를 높였다. 생산과 전투로만 구성된 단순한 게임플레이에서 탈피했다. 영웅 유닛인 코만도를 이용한 특수작전 임무와, 대규모 유닛을 동원한 화력전이 적절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아직 여명기였지만 모뎀이나 랜 등의 네트워크를 이용한 멀티플레이도 지원했다. 강력하지만 느린 유닛으로 구성된 GDI와, 치고 빠지는 전술에 능한 Nod라는 양 진영의 대결구도는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의 큰 특징이다.

게 임은 출시 이후 300만장 이상이 팔리며 흥행에 성공했다. 당시 게임 시장의 규모에 비추어 보면 이는 정말 압도적인 판매량이었다. 게임 매체들은 앞다투어 [커맨드 앤 컨커]에 대한 찬사를 쏟아냈다. 실로 영광의 한 시기였다. [듄2]가 모든 RTS의 아버지였다면, [커맨드 앤 컨커]는 RTS 장르의 ‘롤모델’이었다.

 

만약 소련이 승리했다면? : 레드얼럿

웨스트우드는 [타이베리안 던]의 출시 직후 곧바로 후속작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선]의 제작에 들어갔다. 하지만 게이머는 후속작 완성까지 공백기를 채워 줄 또 다른 『커맨드 앤 컨커』를 원했다. 웨스트우드는 게이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1996년 『커맨드 앤 컨커』의 외전격 타이틀을 내놓았다. 비록 외전이었지만, 이 게임은 전설을 뛰어넘어 하나의 신화가 됐다.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Command & Conquer: Red Alert)]이 나온 것이다.

정식발매 된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 패키지.

[레드얼럿]의 배경은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던]보다 이전 시대의 이야기다. 한마디로 프리퀄 개념의 타이틀이다. 이 게임은 설정이 놀랍다. ‘아인슈타인이 시간 여행을 통해 히틀러를 제거했는데, 이번에는 스탈린과 소련이 영토 확장에 눈이 뒤집힌 악의 제국이 되어 유럽을 침공한다’라는 가상역사였다. 이 간단해 보이는 설정 하나에 당시 수많은 게이머가 전율했다.

[레드얼럿]의 가치는 게임 시스템에서도 빛났다. 지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RTS 방식들은 [레드얼럿]에서 완성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Ctrl] + 숫자키로 부대를 지정하는 기능은 [레드얼럿]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 기능이다. 이밖에 ‘명령 예약’이나 모뎀을 이용한 멀티플레이(일명 ‘모플’)도 처음 선보였다.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은 RTS라는 장르를 완성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게임 내의 다른 부분도 전작과 비교했을 때 큰 변화가 있었다. 자원 채취 방식을 간소화 했다. 빨리 자원을 모아 유닛을 생산하고 전투를 벌일 수 있도록 게임의 템포를 조정했다. 다소 느렸던 유닛의 속도도 크게 개선되었고, 게임 속도 자체도 전작에 비해서 빨라졌다.

[레드얼럿]의 또 다른 특징은 진영과 유닛이 특별한 상성 관계 속에서 밸런스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상성 관계야 말로 [레드얼럿]의 최대 장점이다. 예를 들어, 연합군의 미디엄 탱크는 소련군의 동급 유닛인 헤비 탱크보다 개별 성능은 떨어지지만 가격이 싸다. 반대로, 연합군의 순양함은 매우 강력하지만 훨씬 저렴한 소련군의 잠수함에 취약하다. 가격대비 효율성을 잘 살려 게임을 진행시켜야 한다.

이 런 상성은 지금이야 당연한 개념이지만, 이 시기에는 매우 낯선 개념이었다. 다만 처음 시도되는 만큼 실제 게임상에서는 밸런스가 잘 맞지 않았다. 바다가 있느냐 없느냐 따라 진영간 밸런스가 크게 갈리고, 소련군은 헤비 탱크를 뽑아 물량으로 밀어버리면 쉽게 이길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드얼럿]의 상성 시스템이 훗날 등장하는 RTS에 큰 영향을 끼쳤다.

[레드얼럿]은 분명 차기작인 [타이베리안 선] 완성까지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외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C게임 역사에서 손꼽히는 명작이 됐다.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혁신적인 게임을 매년 내놓는 웨스트우드의 개발력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레드얼럿]의 테마곡인 ‘Hell March’는 최고의 게임 음악으로 손꼽혔다. 이때까지만 해도, 웨스트우드와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는 영원할 것처럼 보였다.

 

운명의 갈림길, EA와의 만남!

[레드얼럿]의 대성공으로 웨스트우드는 승승장구했다. 1997년에는 [레드얼럿]의 확장팩인 [카운터스트라이크]와 [애프터매스]를 내놓으며 붐을 이어갔다.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던]과 [레드얼럿]을 콘솔로 이식해 발매하기도 했다. 웨스트우드가 제작한 게임이 전 세계 PC게임 시장의 5~6%를 점유할 정도였다. 이때는 ‘블리자드’나 ‘밸브’도 웨스트우드를 따라잡지 못했던 시기였다.

영원할 것 같던 웨스트우드는 1998년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했다. 당시 덩치불리기에 한창이던 EA는 웨스트우드를 1억 2천만달러라는 거금을 주고 인수했다. 문제는 지금도 그렇지만 EA라는 회사에 대해 게임 업계 안팎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는 점이다.

게이머의 부정적인 시선은 그렇다 쳐도, 개발자들이 인수에 반발하면서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당장 EA가 웨스트우드를 인수하자 상당수의 핵심 개발자들이 회사를 떠났다. 당시 분위기라면 충분히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었건만, 경영진이 갑자기 EA와의 인수를 추진한 것이다. 웨스트우드라는 회사 자체는 2003년까지 이름이 남아 있었지만, 실제로는 1998년 EA와의 합병과 동시에 해체된 것과 다름 없었다.

아무튼 차기작인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선]의 개발 와중에 개발자의 대규모 퇴사가 벌어졌으니 출시 지연은 불 보듯 뻔했다. 여기에 EA가 빨리 게임을 출시하라고 압력을 넣기 시작하면서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EA로서는 1억달러가 넘는 거액을 주고 인수한 마당에, 빨리 성과를 보이지 않으면 난처한 상황이었다.

반면 웨스트우드 입장에서는 [타이베리안 선]은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인 프로젝트였다. 또 게이머에게도 전작의 명성을 잇는 게임이 될 것이라 선전해 왔다. 게다가 다수의 개발자가 퇴사한 마당에 EA가 제시한 출시 일정은 무리에 가까웠다. 개발자가 스스로 만족 할 때까지 게임발매를 하지 않는 블리자드의 철학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실패로 끝난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선’

우여곡절 끝에 1999년 8월, 전작 [타이베리안 던] 이후 4년만에 후속작인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선]이 나왔다. (게이머에 따라 ‘커맨드 앤 컨커2’로 부르기도 한다) 여러 잡음이 있었지만, [타이베리안 선] 자체는 일단 괜찮은 게임이었다. 외적인 면에서 전작인 [타이베리안 던]나 [레드얼럿]에 비해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다.

[타이베리안 선]의 가장 큰 특징은 당시 최신의 기술인 복셀 기법을 사용해 정교한 전장을 구현했다는 점이다. 지형지물에 따라 전략이 바뀌면서 더욱 사실적인 전투가 가능해 졌다.

예 를 들어 포탄을 맞은 지형이 움푹 들어가고, 이렇게 파인 지형을 지나는 차량의 속도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게이머는 이런 지형의 변화를 이용해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 복셀 기법의 힘으로 황폐한 자연 환경이나, 파괴된 도시, 각종 돌연변이 등 세기말적 분위기도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되었다. 무한궤도 차량 대신 워커(이족보행병기)가 대규모로 등장한 점도 SF팬들의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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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선]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선] 스크린샷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베리안 선]은 전작의 명성을 잇는데 실패했다. 가장 큰 문제는 복셀 기법 그 자체였다. 필요로 하는 컴퓨터의 사양이 너무 높았다. 동시기에 나온 [스타크래프트]가 486 PC에서도 어느 정도 돌아가는 반면에 [타이베리안 선]은 유닛이 조금만 많아져도 게임이 기어가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는 인구수 제한이 없는 게임이었다!

전 작의 후광에 의지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점도 실패의 원인이다. 예를 들어, 블리자드가 [워크래프트]에 도입해 호평을 받은 안개효과를 채택하지 않고 기존의 방식을 고수한 점이나, 엔지니어 한 명에 건물이 통째로 넘어가는 부분은 계속 지적되어 왔던 부분이지만 그대로 이어져 비판을 받았다.

 

불타는 세계무역센터 ‘레드얼럿2’

그래도 [타이베리안 선]은 발매 한 달 동안만 해도 150만장 이상 팔렸다. 이는 EA가 그때까지 판매한 게임 중에서 가장 놀라운 판매 속도였다. 대단한 성과였지만, 그래도 개발 기간과 전작의 명성에 비하면 기대 이하의 결과였다.

EA와 웨스트우드는 굴하지 않고 이듬해인 2000년 [레드얼럿]의 차기작을 발매했다. 하드보일드한 분위기였던 [레드얼럿]과는 달리, [레드얼럿2]는 스토리 자체는 전작에서 이어지지만 유쾌한 분위기의 게임으로 등장했다. 웨스트우드의 기존 개발 인력이 거의 퇴사한 탓에 이 시점부터 『레드얼럿』 시리즈와 기존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 본편과의 스토리 연계는 끊어지고 완전한 별개의 시리즈가 되었다.

[레드얼럿]. 잘 보면 패키지에 세계무역센터가 불타는 장면이 보이는데, 9.11 테러 이후 이 패키지는 수정되었다.

[레드얼럿2]에 대한 게이머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코믹하게 변한 분위기는 의외로 스토리와 잘 맞아 떨어졌고, 복셀 엔진을 개량해 한층 더 뛰어난 그래픽을 선보였다. 한국에서 [레드얼럿2]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임이다. EA가 한국 시장을 겨냥해 자막은 물론 음성까지 모두 한국어화 해 발매한 유일한 『커맨드 앤 컨커』시리즈다. 아예 한국이 강력한 공군과 해군 세력을 자랑하는 연합군 진영으로 등장했을 정도다.

그러나 [레드얼럿2]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커맨드 앤 컨커』 FPS버전인 [레니게이드]의 부진으로 또다시 어려움을 겪게 됐다. 결국 웨스트우드는 2003년 공식적으로 해체되며 최후를 맞는다. 잔류를 희망한 웨스트우드의 일부 개발진은 EA 퍼시픽 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이곳에서 개발한 첫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가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200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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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 게임화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커맨드 앤 컨커 3: 타이베리움 워’

[제너럴]은 파격적인 게임이었다. 완전 3D 엔진으로 게임을 구현됐다. 시리즈 고유의 인터페이스인 사이드바 생산 방식을 블리자드와 유사한 방식으로 변경하는 등 변화를 시도했다. 실사 동영상도 과감히 생략했고, 게임 플레이도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방향을 바꿨다.

제너럴 이후 EA 퍼시픽은 EA 로스엔젤레스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들이 절치부심해 내놓은 『커맨드 앤 컨커』의 정통 후속작이 바로 [커맨드 앤 컨커3: 타이베리움 워](2007)다. 8년만에 나온 정식 후속작이며, 사실상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 본편의 마지막 작품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시대에 맞게 3D 기술로 전장을 구현했으며, 외계 종족 ‘스크린’을 추가해 3종족 구도로 게임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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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맨드 앤 컨커3: 타이베리움 워]

[커맨드 앤 컨커3: 타이베리움 워] 게임화면

[타이베리움 워]는 시리즈의 전통성에 많은 신경을 썼다. [제너럴]에서 사라졌던 실사 동영상도 다시 부활했고, 생산 방식 역시 사이드바로 돌아갔다. 극히 음침하던(?) 전작의 분위기 대신, 1편의 분위기와 비슷하게 맞추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노력의 결실인지, [타이베리움 워]는 팬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신들의 황혼

[타이베리움 워]는 실제 판매량에서도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지만, 이 때는 RTS 장르 자체가 쇠퇴하던 시기였다. 90년대 전성기의 영광은 사라지고, 200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 블리자드, 렐릭, EA LA 세 회사만이 RTS 장르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EA LA는 시대의 뒤안길에서도 끈질기게 버텼다. 2009년 [레드얼럿3]으로 호평을 받으며 분투했다.

하 지만 예정된 종말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2010년 발매된 [커맨드 앤 컨커4: 타이베리안 트와일라잇]은 15년 가까이 이어온 이 장대한 시리즈의 마침표를 찍게 된다. 이 작품은 『커맨드 앤 컨커』의 장대한 서사시를 마무리 하는 마지막 작품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실상 뚜껑을 열어보니 너무나 형편없는 졸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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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맨드 앤 컨커4: 타이베리안 트와일라잇]

[커맨드 앤 컨커4: 타이베리안 트와일라잇] 게임화면

[트와일라잇]은 본래 본편과 상관없는 온라인 게임으로 만들려다가, 프로젝트가 취소되고 EA가 억지로 『커맨드 앤 컨커』 본편으로 끼워 맞춘 게임이다. 게다가 본사의 출시 기한 압박으로 많은 부분 삭제된 체 발매됐다. 그 결과물은 팬들 사이에서 ‘금기어’가 될 정도의 졸작이었다.

[트와일라잇]을 끝으로 웨스트우드의 명맥을 유지해온 ‘EA LA’마저 해산됐다. 사실상 『커맨드 앤 컨커』시리즈도 운명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EA는 그래도 『커맨드 앤 컨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2012년 웹 게임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움 얼라이언스]를 서비스 했고, 이후 ‘제너럴’ 시스템에 기반한 [온라인 RTS 커맨드 앤 컨커]를 개발했지만 그마저도 2013년 중단됐다.

18년이란 오랜 세월을 이어 온 걸작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는 마침내 사망선고를 받았다. 웨스트우드는 이제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고, EA는 『커맨드 앤 컨커』 프로젝트 중단 이후에도 프랜차이즈를 유지하겠다고는 이야기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다.

[스타크래프트]의 블리자드 조차 고전하는 상황에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가능성은 더더욱 없어 보인다. 시대는 변해서 지금은 RTS에서 파생된 [리그오브레전드]가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 게임 역사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황금기를 함께 한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는 이제 한 시대의 황혼과 함께 저물어 간다.

 

참고 자료 및 이미지 출처

· 게임의 역사, 제우미디어
· 커맨드 앤 컨커 공식 홈페이지, commandandconquer.com
· 위키피디아 커맨드 앤 컨커 항목 en.wikipedia.org
· 게임스팟 커맨드 앤 컨커 리뷰, gamespot.com

 
김경래 | 게임어바웃 기자
초등학교 시절 구입한 14400bps 모뎀이 달린 386PCPC통신 ‘천리안’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를 비롯해 [심시티2000]과 [적색경보] 등 다양한 게임을 즐겼으며, 폭넓고 다양한 게임의 역사와 문화적 의의 발견에 관심이 많다.
발행2014.10.20.